원장님의 히스토리

처음부터 한의사가 목표는 아니셨답니다. 사람을 아름답고 멋지게 만드는 핏에 관심이 많던 청소년 시절에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셨데요.한의사가 되기 전에는 몸에 어울리는 옷을 고민하셨다면, 한의사가 된 후에는 옷에 어울리는 얼굴을 찾아드리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시죠. 진료실에서 어떤 환자를 보시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먼저 옷과 얼굴 라인부터 살핀다고 하시네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셨데요. 대학교 졸업 후에는 그림과 만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이현세 화백의 화실에서 일하면서 데생, 색감을 현장에서 익혔습니다. 요즘처럼 웹툰이 발달한 시대였으면 웹툰 작가가 되셨을수도 있겠죠? 그 때 익힌 실력으로 지금도 안면 윤곽이나 시술 디자인만큼은 누구보다도 예술적으로 잘 뽑아 내신답니다.

늦깍이 한의학도였던 원장님은 젊은 동료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셨다고 해요. 입학하자마자 이론과 실습의 커리큘럼이 어렵기로 소문난 침구학회에 가입하여 6년동안 혹독한 과정을 통과하셨어요. 장학금도 받으시고 학생 신분으로 논문대회에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죠. 그 와중에 출산,육아까지 병행하셨다고 하시니 믿어지질 않네요. 전통침법부터 현대침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침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게 된 데는 이런 슈퍼파워가 바탕이 되었겠죠?

원장님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병 치례가 많으셨답니다. 얼굴과 등에는 피부 트러블과 여드름이 심했고, 하복냉증과 생리통으로 진통제를 한주먹씩 드셔야할 정도로 고생도 심하시고, 특히 수족냉증이 심해서 겨울에는 한 시간만 밖에 나가도 발가락이 동상으로 짓무를 정도로 혈액순환 장애도 심하셨데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치료해 내신 상태입니다. 대단하시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실력이 급성장하게된 계기가 되셨답니다. 딱히 아픈 데가 없으신 지금도 계속 한약과 뷰티시술로 관리를 하고 계신데요, 워낙 애주가이신지라 평생 술을 마셔도 탈 없는 몸과 피부를 만드시기 위해서라는 후문입니다. 덕분에  지금도 원장님은 간단한 기초 메이크업만 하고 다니실 정도의 미모를 유지하시고 계십니다.

원장님께서 여러 가지 치료법을 섭렵하시고 공부하시면서도 한 가지 치료의 철칙이 있으십니다. 침치료든 한약이든 시술치료든 가족에서 쓸 수 없는 한약재나 치료는 환자에게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원장님만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그래서 녹용, 사향 등의 고급 약재는 반드시 직접 확인하시고, 정기적으로 약재에 대한 신뢰도를 직접 점검하십니다. 왜냐면 두 자녀에게 한약을 몇 년째 계속 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무리한 치료는 도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의 피부트러블과 아토피도 고치셨고, 모친의 얼굴은 계속 젊어지고 계시고 부친은 몸이 2일 이상 아프신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가족에게 쓰지 않는 치료는 환자에게도 쓰지 않는다. 가족에서 사용할 수 없는 약재는 환자에게도 사용하지 않는다.” 정말 믿음직하죠?